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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되지 못한 옷차림과 나태한 표정으로 사랑은 운명이라고 부르짖는 사람들과 종종 마주치곤 한다. 멋쩍은 웃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 넘기곤 하지만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혹시 저들의 주장은 게으른 자신에 대한 군색한 변명은 아닐까?'
운명론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바보 같다. 아니 바보처럼 순진하다. 화장기 하나 없는 자신의 얼굴과 방치된 몸매에도 누군가는 지상 최고의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환호성을 올릴 것이라 생각한다. 세련되지 못한 말투나 빈곤한 지갑의 현실에도 천국의 미소를 보여줄 것이라 착각한다. 물론 그런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시작된 뒤 얻게 되는 보너스 같은 것이다. 최초의 출발점에선 정성스럽게 가꾼 외모와 반듯한 매너가 가산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보다 앞선 지점에서 달리기 시작할 수 있다면, 골인 지점도 그만큼 가까울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영원히 이길 수 없는 게임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들이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 출발선에서 알아야 할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무엇일까? 남자는 여자의 외모에 환호하고, 여자는 남자의 자동차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아니라고? '정자에서 온 남자, 난자에서 온 여자'의 저자 조 쿼크는 이렇게 설명한다. "남성들이 꿈꾸는 것은 생식이고, 여성들이 바라는 것은 양육이다." 남자는 욕망이 일어나는 매혹적인 외모에 반응하고 여성은 안정된 생활을 위한 경제력에 이끌린다. 사랑의 출발점인 셈이다.
허리 가늘고 S라인이 살아 있을수록, 노출 심한 의상에 착 감기는 스타킹이 드러날수록 남성들은 환호한다. 여성의 몸매와 의상은 하나의 언어이며 이 언어는 도발적인 유혹을 끊임없이 남성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생식, 즉 섹스에 집착하는 남성들은 유혹에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사랑도 대부분 여기서 시작된다. 반면 여성은 어떠한가. 무의식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이런 말이 들려온다. '그의 사냥 실력이 당신과 당신의 아이를 키울 만큼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해?' 임신과 양육이라는 상대적으로 복잡한 조건을 생각해야 하는 여성들은 남자를 고르는데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나의 아이를 양육하는데 필요한 남자의 능력이다. 커다란 자동차가 상징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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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비판을 할 것이다. "여자의 외모와 남자의 자동차를 들먹거리는 것은 저급한 쾌락을 위한 궤변일 뿐이다"라고. 아니, 그 의견엔 동의할 수 없다. 사랑과 쾌락의 경계선을 명확히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단 말인가? 영화 '음란서생'에서 한석규는 이렇게 말했다. "마마님을 본 순간부터 마음 속엔 음란한 상상이 들어, 그것이 음란한 욕심인지, 아니면 사랑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눈먼 봉사처럼 우연히 문을 두드리는 사랑 따윈 없다. 러닝 머신 위를 달리고 다림질이 잘 된 양복을 걸치고, 마스카라를 올려 세우고 자동차를 광나게 닦았을 때 사랑은 찾아온다. 운명이란 '로또'를 믿지 마라. 800만 명 중의 하나라는 확률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오지 않으니까.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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